그분은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은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은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는 부요하셨으나 가난하게 되셨다.  가난한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가난한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부요한 상태에서 가난하게 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이 땅에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 일어나신 것에 비하면 비교할 것도 아니다. 그분 자신께서 직접 취하신 가난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하셨음에도, 그분은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다.  그분은 빈곤 속에 태어나셨다. 능력의 팔로 세계를 유지하시는 그분께서는 힘없는 아기가 되셔서 그분의 어머니의 팔에 안기셨다. 하나님의 아들은 가난하게 되셨다.  너무 가난하게 되셔서 어느곳에도 그분을 위해 계실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분께서 태어날 장소가 없었다.  나중에, 그분은 말씀하시길,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8장 20절).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에 있어서 가난하게 되셨다.  그분께서 동물을 위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을 때, 아무 빛남도 장엄함도 있지 않았다.  그분은 구유에 누이셨는데 바로 동물을 위한 여물통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분께서 이 땅에서 처음으로 받으신 첫번째 처소였다. 그렇게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그분께서는 강보에 싸여 당신의 알몸의 수치를 가리셨는데, 아담의 다른 어떤 후손들과 똑같이 되셨기 때문이다.  죄가 그분에게 전가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태어날 때부터 가난하셨다.  그래서 비록 그분이 태어나셨을 때 옷을 받기는 하셨어도, 나중에는 그분의 의복을 그분으로부터 벗겨 갔고, 로마 병정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제비뽑아 나누었다.  그분께서 너무 가난하게 되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우리 앞에서 얼굴을 가리운 사람”같이 되셨다 (이사야 53장 3절).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매우 가난하게 되셔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하는 어떤 권리도 갖지 못하게 되셨다. 아버지에 대한 어떤 권리도 없으셨다.  그분의 마지막 남의 의복마저 이교도들에게 주어졌다. 

그분은 또한 명예에 있어서도 가난하게 되셨다. 태어나실 때 부터, 그리스도께서는 멸시받으셨고, 핍박당하셨다.  그분은 지명 수배자셨다.  그분이 태어나자 마자 마리아와 요셉은 그분과 함께 애굽으로 피해야만 했다.  그분의 생애 동안 하나님의 적들은 그분을 죽이길 원하였고, 마침내, 그분은 이 세상으로부터 쫓겨 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권능에서도 가난하게 되셨다.  그분은 천국에 계셨었다.  그래서 명령만 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권능을 가지셨던  그분께서 마침내 가장 약한 사람으로 십자가에 못박힘을 당하셨지만, 그것이 바로 그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다.  그분께서 하나님 안에서 가난하게 되셨는데, 바로 그것이 그분의 가장 극심한 빈곤이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분을 단념하셨고, 그분의 적들이 그분을 옷벗기고 그분을 채찍질하도록 내버려 두셨고 그 후에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나두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하게 되셨는데 그분께서 모든 자신의 백성들의 빚을 갚으셔야만 했기때문이다.  그분께서는 가난해 지셨는데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들의 죄책으로 뒤덮이게 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그분은 가난한 그리스도, 가난한 예수, 가난한 아기셨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매우 가난하게 되시어 하늘이나 이 땅 어디에서도 그분이 계실 곳이 없게 되었다.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으시면서 가난하게 되셨다.  그분은 죄인들 중에 가장 가난하게 되셨고, 이런 방법으로 그분께서는 죄인들의 구주가 되고자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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