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 이사야 9:2
세상 곳곳에서 재해와 전쟁과 죽음의 나쁜 소식이 들립니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스러운 구원의 소식입니다. 문제 많은 이 세상이지만 어떤 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찾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 주님은 어둠 속을 걷지만 큰 빛을 볼 사람들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사망의 그늘진 땅
사망의 그늘진 땅이 어디일까요? 오늘 성경 말씀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앗수르가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해서 집이 불타고 사람들이 죽거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머지않아 온 이스라엘이 점령당하고 유다도 공격을 당할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모두에게 몹시 어두울 때입니다.
하지만 더 심각하게도 사람들은 영적인 어두움 가운데 살았습니다. 유다의 왕은 우상을 섬겼고, 백성들 사이에서는 여러 끔찍한 죄가 만연했습니다. 미신(사 2:6), 물질주의(사 2:7), 우상과 자기만족 추구(사 2:8), 교만(사 2:17), 성적 만족 추구(사 3:16), 과도한 음주(사 5:11,22), 속임(5:21)이 넘쳐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날 때부터 어둠 속을 걷습니다
이 죄들은 사람이 전적으로 악하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사람은 어둠 속을 걷고 있습니다. 그것이 천성입니다. 낙원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길로 고집스럽게 갑니다. 하나님과 떨어져서 참된 생명을 알지 못합니다. 죄와 허물 가운데 죽어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죄의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 성경 말씀에서 말한 “흑암에 행하는 백성”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는 자”입니다. 그대와 저 모두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음과 고통과 비참을 겪고 자기만족을 위해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신, 물질주의, 우상과 자기만족 추구, 교만, 성적 만족 추구, 과도한 음주, 속임 등의 죄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됩니다.
큰 빛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어둠 속에 살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다가 죽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우리의 눈이 열려서 이 사실을 보게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자기 죄 때문에 어둠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빛이 비친다고 말합니다. 이사야가 살던 때에 사람들에게 비취는 빛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구원을 가져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회개하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셔서 자유와 위로와 구원을 주십니다. 하지만 더 큰 빛이 갈릴리에 비출 것입니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죄 때문에 처한 사람의 어두움은 사람의 힘으로 쫓아낼 수 없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구원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서 이런 구원을 사람에게 주십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예수님은 평강과 복의 빛이십니다. 주님은 사망의 어두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주십니다. 무지의 어두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지식의 빛을 주십니다. 죄의 어두움에 처한 사람에게 구원의 빛을 주십니다.
구원이란 말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과 마음과 몸 모두가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온 세상이 새롭고 완전해질 것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 그리스도의 빛은 생명과 영생을 줍니다.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때부터 이 빛이 세상이 비추었습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눅 2:8,9). 이 세상의 어둠과 우리 마음의 어둠 한가운데 하나님의 큰 빛이 비칩니다.
이 빛은 반드시 우리 마음에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가 이 빛을 그저 바라보거나 한동안 이 빛을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이 빛이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이 빛으로 밝아져야 합니다.
이 빛이 반드시 우리 마음에 비춰야 함
18세기 말 영국 의회에 윌리엄 윌버포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노예 해방을 위해 애쓰던 사람입니다. 어느 날 윌버포스가 친구이자 영국 총리인 윌리엄 핏을 데리고 유명한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갔습니다. 예배 동안에 윌버포스는 마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핏은 설교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지 못했습니다. 윌버포스의 마음에는 빛이 비치었지만 핏의 마음은 어둠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빛이 비쳐야 합니다. 빛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우리 마음에 그 빛이 들어와야 합니다. 사람들은 곧잘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에 대해 들었기 때문에 이제 모든 것이 잘 될 거라 생각합니다. 자기 죄의 악함도 모르고 하나님의 거룩하심도 모르면서 자기가 죄 용서를 받았을 거라고 간주합니다. 자기 영혼에 스스로 잘 될 거라고 말하지만, 우리 영혼에 참된 평강과 진짜 위로를 주는 것은 우리의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선언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하여서 우리 마음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우리의 눈을 여셔서 우리가 날 때부터 처한 어두움을 보게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더러운 영혼을 보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동시에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시고 예수님의 순전하심과 예수님이 갈보리에서 다 이루신 일을 보게 하십니다. 소망의 문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열립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과 고난이 얼마나 존귀하고 크신지 보게 되고, 우리 안에 날 때부터 있던 그리스도에 대한 적대감이 사라집니다. 대신 우리 마음에는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경배가 싹틉니다. 우리 마음이 바뀌어서 하나님의 진리에 동의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는 죄 용서를 간구할 근거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로 도망가서 구원자를 바라보고 그분의 아름다우심을 바라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모든 생명과 구원의 보화가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만 우리의 구원이 있으므로 우리에게 예수님이 너무도 소중해집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이 힘을 얻어 우리의 죄와 비참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동의하면서 동시에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워지길 갈망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우리의 마음에 비추는 하나님의 평강을 어느 정도 맛봅니다. 이토록 놀라운 구원자를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갈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당신께로 이끄시고,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견고한 소망과 확실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되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의무를 알며, 순종하는 새롭고 생명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골로새서 1장 13절의 말씀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대의 삶에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지금도 이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도와달라며 주님을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십니다. 예수님께 “주님 저를 이 어둠에서 건져 내시고 주의 빛을 제 마음에 비추소서”라고 부르짖으십시오.
제럴드 프로세이 목사님은 온타리오주 해밀턴 자유개혁교회 은퇴 목사님입니다.
200812 메신저 잡지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