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시]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 시편 25:1-3
다윗이 시편 25편을 언제 지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핍박받던 젊은 때가 아니라 삶의 후반에 몸이 쇠약해졌을 때일 것입니다. 젊은 날 지었던 죄가 생각나고, 마귀와 세상과 자기의 죄악 된 옛 본성이라는 영혼의 세 원수에게 공격을 받아 영혼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느낄 때였을 것입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이런 다윗과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육체나 영혼의 원수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자
영혼이 쇠약하고 어두울 때를 지날 때면 젊은 날의 죄와 실패가 생각나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 마음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게 하시려고 이런 어려울 때를 주십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사람의 도움은 없고, 있다 해도 턱없이 부족한 때를 맞았습니다. 이때 성령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오직 주님만이 주시는 도움을 바라도록 그의 마음을 강하게 이끄셨습니다. 성령께서 다윗의 어둡고 무거운 시간을 이용하셔서 주님의 도우심을 강하게 갈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이 일을 모든 신자 안에서 행하십니다. 성령께서는 그대가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도록 그대의 마음에 역사하십니다. 이런 성령님의 역사는 육체에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맞이하거나 질병과 고통으로 괴로울 때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한, 지난날 지은 여러 죄의 기억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도 일어납니다. 과거의 실패가 생각날 때도 일어납니다. 사람들이나 주변 상황에 실망할 때나 나 자신의 삶이 실망스러울 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나의 마음을 움직여 주님과 주님이 주시는 도움이 갈망하게 하십니다.
다윗은 그때 영혼의 상태가 좋지 못했습니다. 지난날의 죄가 떠올라 집요하게 괴롭혔고 공격과 조롱을 퍼부었습니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보라. 너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랄 수 없다!” 우리가 시편 25편 전체, 특히 16절에서 19절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런 원수의 목소리가 보입니다. 다윗은 죄와 죄의 책임에 시달렸습니다. 마귀가 이를 기회 삼아 약해진 다윗을 나쁜 과거 기억으로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성령 하나님께서 오셔서 다윗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이 진실한 고백을 하게 하십니다. 다윗은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고백합니다. 다윗은 주님께 용서해달라고 간구합니다. 마치 전에는 한 번도 용서받은 것 없는 것처럼 간구합니다. 7,11,17,18절을 읽어보면 “아니 다윗이 예전 죄들을 용서받은 거 아니었어? 죄의 책임이 다 없어진 것 아니었어?”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물론 다 용서받았습니다. 하지만 마귀는 신자의 마음에 의심과 두려움을 주고 과거의 죄를 생각나게 해서 신자가 절망해서 하나님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럴 때 성령께서 주시는 강력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바로 “그 죄들을 다시 주께 고백하고 열렬히 기도하라”입니다. 주님은 기도하고 간구하는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주께 기도할 때는 반드시 주님께서 모든 죄를 완전히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기도하십시오. 다윗이 1절에서 말하듯 영혼으로 주를 우러러보십시오.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본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나의 모든 삶을 주님 앞에 드러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숨기지 말고 내놓고서 “주님, 여기 저의 삶이 있습니다. 주님께 하나도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날 저의 죄와, 저를 찌르는 죄의 책임과, 저의 의심과 저의 두려움과, 마귀와 싸우는 저의 분투 모두 주님께 내놓습니다. 여기 저의 어려움과 시험이 있습니다. 주님, 제게 무슨 일이 닥칠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저는 마음이 눌려 있고, 고통 가운데 있으며, 괴롭힘을 당합니다 … 하지만 주님. 제가 이 모두를 주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삶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것 때문에 주님께로 달려가야 합니다. 숨기지 말고 솔직하며 동시에 간절해야 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주께서 자기에게 오래 참아주시는 일들을 젊은 날에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6절) 라고 기도합니다.
영혼으로 주를 우러러보는 것! 이것이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그 자체로 이미 복되어서 어느 정도 위로를 줍니다! 영혼을 들어 올려 주를 우러러보고 주님 앞에 나의 영혼과 삶을 쏟아낼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큰 복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소망이 생기고 나의 어려움과 시험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니 이렇게 영혼으로 주를 우러러보라고 그대에게 권면합니다. 그대의 영혼이 기도의 날개로 날아올라 주님께로 가야 합니다. 주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건강 문제로 마음이 무거우시거나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까? 영혼을 들어 올려 주를 우러러보십시오!
아마도 그대는 영적인 시험과 환란을 겪으실지 모릅니다. 그대의 죄와 그 책임이 자꾸만 떠오르고, 의심과 절망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마귀와 세상과 옛 본성이 그대를 이기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영혼을 들어 올려 주를 우러러보십시오!
아니면 자식 문제로 고민하실지 모릅니다. 자식들에게 영혼의 생명이 보이지 않고, 자식들이 성경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며, 교회뿐 아니라 부모인 그대와도 거리를 두려고 합니까? 그렇다면 영혼을 들어 올려 주를 우러러보십시오!
성령께서는 이렇듯 주님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간절한 바람이 있고 영혼을 들어 올려 주님을 우러러보는 데서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아 의지하라
그대는 아마도 “다윗이 이런저런 자기 죄를 느끼면서도 어떻게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면서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을까?”하고 물으실지 모릅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이 자기 힘으로 죄와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쓰디쓴 경험을 통해서 이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도움을 받는 법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자녀가 아버지 어머니의 도움과 보호를 의지하듯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자녀가 아버지를 의지하듯 주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오니”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렇든 자식이 부모를 의지하듯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주님께서 “내가 너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주겠노라”라고 하신 약속을 꼭 지키시리라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었기에 다윗은 “하나님이여”라고 하지 않고 “나의 하나님이여”라고 기도했습니다. “나의 언약의 하나님”이란 말을 한 것입니다. 다윗은 언약의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값없이 은혜로이 나에게 잘해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의지한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이런 아이 같은 신뢰가 있었고 하나님이 이런 어려움을 겪는 나를 반드시 도우시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약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다면, 그대는 더욱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약속되신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뒤에 살고 있습니다. 다윗은 아직 약속의 그림자 가운데 살았지만, 그대는 이 약속의 빛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대에게는 언약의 하나님께서 도우시리라고 아이처럼 굳게 믿을 이유가 더욱 큽니다.
지금 그대는 연약한 믿음과 의심과 두려움과 죄악 된 유혹의 공격과 맞서 싸우고 계실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제가 조언을 드립니다.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주께서 그대를 도우실 것입니다! 그대는 주를 의지할 근거가 있습니다! 마귀에게 지지 마십시오. 마귀는 그대의 마음에 의심을 심기를 좋아하며 특히나 그대의 육체나 감정이 힘들 때 더욱 그러합니다. 아마 그대는 마귀가 와서 “너의 질병은 하나님께서 너를 보살피시지 않는다는 표다. 하나님이 너를 벌하고 계신다!”라고 속삭였는지 모릅니다. 마귀의 이 거짓말을 믿지 마십시오. 이런 유혹에 욥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순전히 의지하며 어떻게 답했는지 기억하십시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지하겠노라”(욥 13:15 KJV).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할 때는 마치 자녀가 아버지를 의지하듯 하라고 제가 권면합니다. 죄 때문에 괴로우십니까? 옛날 지은 죄의 책임이 고통을 줍니까? 지난날 유혹에 넘어진 일이 자꾸 떠오르십니까?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자녀가 아버지의 약속을 의지하듯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십시오. 건강이 나빠지고 몸이 쇠약해질 때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의사만 의지하지 마십시오. 의사의 지식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대의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한계가 없습니다.
그대는 다윗처럼 하나님께 간청할 수 있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제가 주를 의지하였사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제가 주를 의지한 것이 헛되다고 말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제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왜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수치가 될까 봐 이토록 크게 염려한 것일까요? 만약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이 수치를 당하면, 다윗의 대적인 마귀와 죄와 세상이 승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대 역시 하나님을 의지할 강한 동기가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지극히 크시고 지극히 신실하시므로 결코 그대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대를 돕고 구하고 어려움에서 건져 내시길 기뻐하십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죄 가운데 망한 사람들을 찾아서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동시에 많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셔서 배고픈 자를 먹이시고 헐벗은 자를 입히시고 병든 자와 눈먼 자와 듣지 못하는 자와 걷지 못하는 자를 고치셨습니다. 물론 이 말은 그대가 주님을 의지하면 모든 병과 장애가 나을 거란 뜻은 아닙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이유에서 그대를 질병에 남겨 두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하나님을 믿는 그대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확신에 찬 신뢰
다윗은 또한 3절에서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에는 하나님에 대한 굳은 신뢰가 있습니다!
다윗의 말대로,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은 여전히 자기 실패와 죄악 된 삶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고 아직 주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했지만, 이미 주님을 의지하는 굳은 신뢰를 드러냈습니다.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인 자신도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의 신뢰는 확신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시편 25편의 이 말씀보다 더 큰 위로와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대가 아이처럼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기다린다면, 주께서 결코 그대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의 영혼을 들어 올리십시오. 주를 우러러보십시오. 그대에게 주님이 필요하다고 고백하고 그대의 어려움과 시험과 문제와 죄를 모두 주께 고백하십시오. “주여, 주께서 저를 결코 수치 당하게 놔두지 않을 것을 제가 굳게 믿습니다”라고 확신에 찬 신뢰의 말로 주께 고백하십시오. 성령께서 다윗처럼 그대의 마음에 신뢰와 확신을 주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리십시오.
시편 25편에는 어두운 반대의 경우도 나옵니다.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 까닭 없이 속이는 사람은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여기서 속이는 사람이란 말은 무엇을 약속해놓고 주지 않는 사람을 뜻합니다. 주께서 그대에게 정직하고 공정하셨는데 그대가 속일 이유가 있습니까? 그대가 읽는 이 메시지는 주께서 그대를 기꺼이 도우려 하신다는 징표입니다. 그러니 주님께로 돌아서십시오. 그대의 영혼을 들어 올려 주님을 우러러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대의 신뢰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다윗이 이 사실을 확신했듯이 그대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행크 벅스마 목사님은 온타리오주 펜윅의 자유개혁교회 은퇴 목사님입니다.
201503 메신저 잡지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