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마태복음 5:7

산상수훈은 지극히 귀한 진리가 담긴 거룩한 보물상자입니다. 예수님의 이 특별한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고 풍성한 하늘의 위로를 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법을 배운 사람마다 산상수훈을 귀하게 여깁니다.

마음에 새겨야 할 산상수훈의 앞부분이 바로 팔복입니다. 팔복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특징을 선포하고 설명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까?”라는 중요한 문제에 간결하며 확실한 답을 주십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자녀는 팔복에 큰 관심을 가집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이 복되다고 하시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고,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누구?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단지 복 받았다는 느낌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된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은 날 때부터 하나님을 노엽고 불쾌하게 하는 죄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보이신 사랑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을 죄인의 마음에 비추시면, 죄인은 저주에서 건짐받고 복된 상태로 회복됩니다.

그러면 “긍휼히 여기는 자”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누가 “긍휼히 여기는 자”일까요?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온유하고 남을 용서하며 불쌍히 여기는 심령입니다. 동정의 입술로 남을 위로하는 말을 하고 후하게 남을 도와서 동정의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오늘날 절실히 필요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동료 그리스도인에게도 동정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동료 신자가 여러 슬픔과 고난을 겪을 때 적극적으로 슬픔을 함께 나누고 도와줍니다. 그들의 약점을 덮어주고 가능한 위로해 해줍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또한 동료 죄인들에게도 동정심을 보입니다. 심지어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에게도 그렇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동료 피조물에 보이는 동정심은 두드러집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동정심보다 더 깊습니다. 물론 거듭나지 않은 사람도 남에게 동정심을 보이지만, 그들의 죄악되고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 대해서 진지하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로 영혼이 살아난 사람은, 동료 죄인을 아직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해서 깊은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으로 봅니다. 그래서 그를 향한 진정한 동정심이 마음에 가득합니다. 이 걱정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입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사람의 진짜 비참과 고통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가 무엇인지 잘 알며 하나님을 잃고 망한 죄인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압니다. 죄를 사람의 가장 큰 원수로 생각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이런 죄에서 건져줄 귀한 해결책을 직접 맛보아 압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에 있는 능력과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죄인에게 “존귀하신 구원자를 보라”고 알려줍니다. 구원자 예수님만이 속수무책인 죄인의 절박한 상황에 딱 맞는 도움이시기 때문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의 자비에 얼마나 크게 빚진 사람인지 잘 압니다. 자기가 보기에 자기는 죄인 중 괴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하셨다면 같은 귀한 자비로 다른 죄인도 구원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 겸손하게 된 죄인은 자기의 불완전함을 잘 알기에 남을 멸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동료 죄인들에게 “다가올 진노에서 도망쳐서 영생을 붙잡으라”하고 격려하길 기뻐합니다. 따스한 동정심에서 그들에게 예수님이 얼마나 필요한지 말하고, 복음에서 우리 앞에 밝히 드러난 완전한 피난처이신 예수님께로 도망가라고 강권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복음에 드러난 하나님의 초청에 대해 말하길 좋아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 초청은 사람의 가치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더욱 든든한 기초가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사역이 이 초청의 기초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복음의 값진 약속을 풀어 보여주기를 좋아합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또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령도 숨기지 않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다고 말합니다(행 17:30).

무엇보다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지극히 은혜로우시고 긍휼함이 많으신 구원자 예수님 안에는 죄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사실을 말하길 좋아합니다. 하나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 동료 죄인들을 위해 간구할 수 있다는 것에서 누리는 위로를 소중히 생각합니다. 동료 죄인을 위한 간구가 거룩한 기쁨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고통받는 죄인을 구원하실 능력과 뜻이 있다는 사실을 의지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움이 필요한 죄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복 주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긍휼

“그들이 긍휼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사람에게 삶의 비법은 바로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들을 다가올 진노에서 건지셨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들이 받은 죄사함의 기초이며,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들을 천국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들에게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고 그 마음을 따라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긍휼을 받았고 또 필요할 때마다 긍휼을 더욱 받으리라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사는 내내 긍휼을 받다가 죽어서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이야말로 지금부터 영원까지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필요한 모든 긍휼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죄와 약점을 용서하실 것입니다. 시험받고 유혹받을 때마다 하나님의 하늘 긍휼을 받아 견딜 것입니다. 그들은 많은 고난을 받을 것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손이 나를 붙잡고 위로해 주시는 일을 늘 새롭게 경험할 것입니다. 종종 그들의 원수가 그들을 넘어뜨리려 하지만 주님께서 늘 풍성한 자비로 필요한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의 원수는 강하고 포악하지만, 하나님의 자비는 그들을 돕고도 남습니다. 사탄은 울부짖는 사자와 같이 그들을 위협하지만, 사실 그리스도가 이미 부순 적일 뿐입니다. 그리스도는 무한한 사랑과 긍휼로 당신의 백성을 늘 변호하십니다. 긍휼하심이 많으신 보호자 그리스도의 뜻이 아니고서는 그들은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일을 그들에게 유익이 되게 바꾸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많은 것이 참으로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신실하신 그들의 구속주께서 적절한 때에 은혜로이 도움을 베푸실 것입니다. 죽음이 다가와 무거울 때도 구속주께서 필요한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긍휼의 이유

오늘 성경 말씀은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긍휼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남을 긍휼히 여기는 것에 공로가 있어서 내가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긍휼히 여긴다고 해서 내가 긍휼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행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인의 유일한 소망이십니다. 이 긍휼하심이 많으신 구속주께서 다 이루신 구속이 바로 도움이 필요한 죄인에게 충만한 은혜를 줍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의 충만함은 절대 닳지 않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선행은 오직 구원하는 은혜의 열매일 뿐입니다. “이처럼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마 7:17).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이 복되며 오직 그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이 바로 그들에게 화목한 아버지이시며 그들은 하나님이 입양하신 자녀입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의 보혈과 의로움 덕분에 은혜롭게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나를 이토록 은혜롭게 대해주시는 하늘 아버지가 싫어하시는 죄를 내가 여전히 짓는구나’라는 생각에 괴로워합니다. 이 사실이 견딜 수 없이 힘듭니다. 그래서 매일 하늘 아버지의 용서가 필요합니다. 자기의 중보자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제사에 나타난 하늘 아버지의 변하지 않는 사랑과 은혜에서 위로를 찾고 또 받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제사에는 변하지 않는 능력과 무한한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하늘 아버지의 용서를 거룩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귀하게 여깁니다. 자녀가 아버지를 신뢰하듯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소서”라고 간구하길 좋아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기는 자는 참으로 복됩니다! 그들의 복은 끝이 없습니다. 이미 긍휼히 여김을 받았고 앞으로도 필요할 때마다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아무도 본성대로라면 남을 긍휼히 여기지 않습니다. 이 마음은 은혜의 특별한 열매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었습니다. 이 긍휼하심이 사람이 온유하고 남을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게 만듭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긍휼하심이 긍휼히 여기는 사람을 만듭니다. 긍휼은 또한 은혜 안에서 자라나는 비결입니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심정이 없으면 참된 거룩함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그대는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형제자매를 사랑하십니까? 슬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합니까? 여전히 그리스도 밖에 있는 죄인들을 불쌍히 여깁니까? 그대의 원수도 기꺼이 용서하십니까?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시편 41

고 제럴드 햄스트라 목사님은 온타리오주의 자유개혁교회에서 목회하셨습니다.

201110 메신저 잡지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