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알고자 하여” – 빌립보서 3:10
참 종교에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생명이 있어 우리에게 깊은 만족을 줍니다. 참 종교는 사람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과도 연합하게 합니다. 참 종교의 비밀은 많은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심지어 많은 종교적인 사람에게도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비밀을 드러내 주십니다. 그리고 참된 종교와 은혜의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 비밀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아는 데서 큰 위로를 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알아 얻은 마음의 평안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기쁨과 힘은 견고했고, 소망은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탁월하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자 그리스도와 영원히 연합하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바울의 유일한 바람은 그리스도를 알고 이 귀한 구속자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부활의 능력을 알기만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물론 바울에게 중요한 일이 많았지만, 그리스도에 비하면 다 사소할 뿐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과 그리스도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다른지 잘 알았습니다. 회심하기 전의 바울의 삶은 가슴 아픈 기억입니다. 회심하기 전 바울인 사울은 예수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핍박했습니다. 사울보다 그리스도인을 혹독히 핍박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걸로 자기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확신했습니다. 참으로 큰 자기 속임에 빠져있던 것입니다. 받은 은사가 많고 또 열정적인 청년 사울은 성경과 신학을 잘 알았지만 다 머릿속의 지식일 뿐이었습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눈이 멀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혜택을 조금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잃고서 멸망으로 가고 있는 죄인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선하신 목자 예수님께서 이 방황하는 잃어버린 양 사울을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지혜와 능력이 사울의 마음을 찌릅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그러자 자기 의로움이 가득한 핍박자 사울은 은혜를 구걸하는 불쌍한 죄인 바울이 됩니다. 자기가 누구를 핍박했는지 알게 되자 마음이 찔려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습니다. 3일 동안 기도로 주님과 씨름하고 나서 주님의 구속하시는 사랑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사울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긍휼을 얻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자 다시스의 사울은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옛것은 가고 새것이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새로워져서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립니다. 이제 성경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의지와 삶과 양심 모두가 새로워집니다.
사울은 회심하기 전에는 자기 의로움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복음에서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 많은 종교인이 이런 상태입니다. 오직 겸손하게 된 죄인만이 자기가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빚진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은혜만이 오직 은혜만이 그리스도를 아는 구원받는 지식을 줍니다.
그리스도를 참되게 아는 것은 신학 지식 이상입니다.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에 주시는 실제적인 지식입니다. 이 참된 지식은 능력이 있어 사람의 영혼을 살아나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알게 된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구원하시는 사랑만을 알기를 바랬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알고자 하여”. 왜 여기서 바울은 예수님의 속죄하시는 죽으심은 말하지 않고 부활만 말했을까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는 지식이 깊어지는 것이 우리의 영적 성장에 필수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여기서 십자를 말하지 않았을까요?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활 없이는 십자가를 알 수 없고, 십자가 없이는 부활을 알 수 없습니다. 둘은 원리상 하나입니다. 바울은 십자가를 제외하려고 부활만 말한 것이 아니라, 부활이 십자가를 포함해서 복되신 구속 사역의 완성이기 때문에 부활만 언급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하시는 사랑의 능력을 더 친밀하고 깊이 알기를 갈망했습니다. 바울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인격을 아는 것과 사역을 아는 것이 신성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이걸 아는 데서 자라갈수록 마음의 평강이 깊어지고 점점 겸손해졌습니다. 자기 자신에 만족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자기를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맺는 열매를 자기 마음에서 경험하길 바랐습니다. 바울은 오늘 성경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진 능력을 언급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울의 가장 큰 원수인 죄와 사탄과 죽음과 지옥에 대한 그리스도의 확정적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승리의 능력이 자기 삶에 효력 있게 나타나길 간절히 바란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승리자, 능력 있는 승리자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부활에 참여하면 영원히 죄 용서를 받고 새로워지며 거룩해집니다.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나게 됩니다. 영생과 불멸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은 이렇듯 그리스도를 닮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비록 그리스도를 닮는 삶에 많은 고난과 환란이 따르더라도 말입니다.
바울의 삶에는 그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풍성히 드러났습니다. 그대의 삶에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그의 부활의 능력이 드러납니까?
고 제라드 햄스트라 목사님은 토론토에서 목회하셨습니다.
199404 메신저 잡지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