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교회 개척 (1)

성경적 교회 개척 (1)

성경적 교회 개척 (1): 기초

성경 봉독: 디도서 1장 1절로 4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사도들에게 그리스도가 주신 권한은 모든 족속으로부터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었다 (마태복음 28장 19절).  그들은 복음을 증거함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의 신비로운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말씀이 주어질 수 있도록 (에베소서 6장 19절)”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함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믿기 위해서 함께 노력 하도록 (빌립보서 1장 27절)” 부름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기존의 교회들은 복음에 계속 집중할 수 있고, 복음 전파를 통해서 다른 교회들이 세워질 수 있게 된다.  교회 개척에 대해서 저술되어진 책들, 기사들, 그리고 지침서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많은 것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짧은 몇편의 논고를 통해서, 우리는 교회 개척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서 특별히 살펴 보길 원하는데, 특별히 디도서를 통해서 공부하길 원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전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멈추지 못하게 하고 교회를 개척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않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기도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아무리 어두울지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퍼져 나가는 일을 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첫번째 시작에서는 우리는 교회가 행하는 모든 수고의 기초는 삼위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 없이, 교회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복음과 희망도 없을 것임을 알게 되기를 원한다.  바울은 이 서신서를 시작하는 부분인 디도서 1장 1절로 4절에서 이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디도는 크레데 섬에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양육을 받았다. 

거짓말의 문화

디도와 크레데에 관한 설명입니다.  디도는 이방인에서 개종한 사람이었고 (갈라디아서 2장 3절), 사도 바울의 동역자이자 돕는자였습니다.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역에서 유용한 사람임을 증명하였고 고린도 사람들이 회개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로써 절대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3절; 7장 13절로 14절; 8장 8절, 16절, 23절; 12장 18절). 그의 사역 말기에, 바울은 디도가 크레데에 있는 교회를 굳건하게 하도록 디도를 세웠습니다 (디도서 1장 5절).  이것은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크레데 섬은 각종 종교적 우상의 본거지였으며, 그리스, 로마, 그리고 이집트의 각종 신과 여신들을 위한 성지들이 있는 곳이 었습니다.  게다가, 지중해 어느곳에서와 같이 사람들을 속이는 말들과 부도덕함이 곳곳에서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지금 이세상과 같이, 진리는 정의하기 힘든 것이며, 불필요한 것이며, 버릴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크레데의 한 저자로부터 나온 다음의 문장을 인용하였습니다: “크레데 사람들은 항상 거짓말하는 사람들이다” (디도서 1장 12절).  이문장의 의미는 악한 일처리들과 거짓말들이 크레데에서는 판을 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명백히, 절대적인 진리라는 생각은 대부분의 크레데인들에게 있어서 쓸모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열심과 비교해서 전혀 부족하지 않은 열정으로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  그렇다면 이런 진술 또한 진리를 서술한 것일 수가 없음을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짓을 사랑하고 실천하는 세상에 복음을 가져오는 것은 극복할 수 없는 불가능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진리가 거리에서 제거되고 그 누구도 진리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것처럼 보이거나 진리를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 속에서 누가 사역을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누구를 믿거나 무엇을 믿으려고 할까요? 

진리의 하나님: 여기에 우리의 기초가 있습니다.      

거짓의 문화에 반하여, 바울은 진리의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는 타락한 정신의 교묘함에 교란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알았습니다 (로마서 2장 15절)”.  본성상, 우리는 진리가 있다는 생각을 억누를지 모르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분은  생명과 복음 그리고 도덕성, 그 모든 것의 근본이 되십니다. 

이 서신서의 서두를 주목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종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확고한 진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에 따른 것이라 (디도서 1장 1절).  바울은 뭔가 사실인 것 처럼 보이는 몇가지 개인적인 진리에 대해서 오랫동안 열심히 생각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섬기기 위해서 온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입니다.  이 구세주는 거짓의 아비, 사탄과 연합하고 있고 타락한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바울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하나님은 그분의 진리가 알려지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은 3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1장 3절).”  바울과 다른이들은 진리를 말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선포할 것입니다. 

바울은 두번째로 그가 진리를 지지하는 것은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어떤 진리에 관한한 사적이며, 주관적이고, 지역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은 이유는 본인 자신을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에 따른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절). 다시 말하면, 여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것을 믿으며, 똑같은 구세주를 예배하고, 똑같은 믿음을 선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택하신 자들” 혹은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지칭함으로써, 그는  아무 차이가 없는 바로 그곳에 차이를 유발시킨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죄인들이 구원을 받게될 때, 그것은 그 누구의 노력이나 장점때문이 아닙니다.  그리고 선택받은 이 모든 이들은 “경건함에 속한 진리”를 고백하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 자신만의 진리를 지지하는 각각의 이질적인 목소리들이 지지하는 혼동스럽고 이질적인 복합체가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계시된 진리를 인정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정확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진리를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어떤 헬라어 사전 (세이어)에 의하면, 여기서 “인정한다” (지식)이라는 것은 문자적으로 “정확하고 올바른 지식”을 의미합니다. 

생명을 주는 건전한 교리: 여기에 우리의 초점이 놓여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건전한 교리에 대한 간절한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필요에 근거해서, 또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도록 격려하고 진리에 대한 자신만의 표현을 만들어내도록 고무시키는 일에 매달려서 교회를 개척하는 자들은 성경적인 부르심에서 실패하게 될 뿐만아니라, 끝없는 영원의 시간동안 영혼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들을 속이도록 용인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대신에 건전한 교리를 요구하고 강조해야 합니다.  이런 교리는 성경에 나오고 우리의 표준문서, 신조 및 모든 시대의 교회의 신앙고백서에도 요약이 되어있습니다. 경건에 속한 교리입니다 (1절).  다시 말하면, 경건한 삶을 조성하는 교리입니다.  경건한 삶을 통해서 바울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구원과 능력 그리고 복음을 입증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참되게 경외함이 있는 곳에서 우리의 삶은 진리의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바르게 믿는 것은 바른 삶을 생산해 낼 것입니다.  우리 지성이 새롭게 될 때, 우리 삶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될 입니다.  거짓을 존중하는 대신에 우리는 진리를 깊이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  거짓을 좋아하기 보다는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거짓말 하실 없는 약속의 하나님: 여기에 우리의 요새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기관들과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와 정치인들을 보듯이 또한 가정과 결혼과 같은 제도들을 수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배신당한 느낌을 공감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은 이제  일어나는 일들이나 사람들을 진정으로 변하시킬수 없으면서도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관념을 더이상 참을 수 없어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는 고통받는 사람들과 공감한다고 할지라도 실제적으로 도와 줄 수 있는 것들이 없기때문에, 초조하게 자기 손을 쥐어짜면서 가만히 서계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을 위로한다고 생각했던것처럼 수십년 전에 사람들은 그와 같은 관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언약을 지키시고 그분이 약속하신 그것을 그분은 성취하십니다.  바울 사도가 찬양하는 바는 하나님께서는 “거짓이 없으신” (직역하면, 거짓말 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시다 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길 바라는 사람들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께 전념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신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디도서 1장 2절).  우리 주변에 모든 것이 무너져내릴 때, 복음 전파와 교회 개척을 위한 유일한 기초는 진리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건전한 교리를 계시하시고, 거짓을 말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분에게 뿌리깊게 의지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토론을 위한 질문들

  1. 복음 전파와 교회개척에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우리가 이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까?  이 두가지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2. 교회 개척을 위해서 올바른 기초를 세우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그분이 축복하시지 않겠습니까? 
  3. 그레데와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 세계사이에 유사한 점들은 무엇입니까?  설교와 교리는 사람들의 관심을 확 깨버리지 않습니까?  우리의 교리를 숨겨야 할까요?  교리를 제시하는 좋지않은 방법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좋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4. 속임수와 깨진 약속으로 가득차 있는 문화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는 거짓말 하실 수 없다는 진리가 어떻게 우리에게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까?

제럴드 M. 빌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