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복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복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편 84편은 우리 시편찬송집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사랑받는 노래일 것입니다. 온 세대의 교회가 이 시편 말씀을 따라 살면서 힘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시편 84편은 시온성 백성들의 마음에 밝은 빛을 비추었습니다. 이 시편을 누가 썼는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다른 시편과 비교해보면 누가 썼는지 감이 옵니다. 시편 42, 43, 27편과 84편 모두에서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 같아 갈망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깊은 웅덩이에서 높이 계신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니 시편 84편의 저자도 아마 나머지 시편처럼 다윗일 것입니다.

다윗은 언제 이 시편을 썼을까요? 경건한 사람 다윗의 영혼에 언제 이 노래가 떠올랐을까요? 분명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집에서 멀리 떨어졌을 때일 것입니다. 아마 아들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산으로 피난 갔을 때일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에 갈 수 없어 간절히 바라고 목말라 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 시편에서 주님을 뵈러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큰 명절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시편에서 주님을 자기 힘으로 삼고 마음에 하나님을 둔 사람들이 얼마나 복된지 선포합니다.

날 때부터 우리는 자기 자신을 힘으로 삼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자기 팔의 힘을 의지합니다. 죄 때문에 “나”가 우리 온 삶의 중심에 있습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 “나”를 두고서 “나”를 섬깁니다. 죄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서 모든 것을 빼앗았습니다. 자기가 왕이 되길 원하며 자기가 왕이 되었다는 상상 속에 삽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자기가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약하며, 부유하다 생각하지만 사실 가난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텅 비어있습니다.

이 사실을 배워 아는 사람은 복됩니다. 자신의 참모습을 보고서 하나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기 시작하시면 우리는 내가 비참하고 가난하며 눈멀고 병들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의 참모습을 봅니다. 죄는 바로 우리의 창조주를 향한 반역이며 주님의 완전하심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좋은 선물을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내버렸다는 사실도 봅니다. 이 빛에 비추어 죄와 우리의 상황을 볼 때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하게 되고,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깊은 바닥으로 데려가셔서 거기서 우리가 눈을 들어 은혜의 보좌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오직 주님께만 힘을 얻는 사람은 복됩니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가 복되다고 시편 기자는 이어서 말합니다. 말씀드렸듯이 이 시인은 큰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사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오늘날의 길과 다릅니다. 깨끗한 포장도로가 아니라 온갖 위험이 기다리는 길입니다. 돌을 치우고 이런저런 장애물을 치워야만 지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이런 길이 복된 사람들의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 길 생각이 마음에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이 길을 생각하고 묵상하며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온의 백성에게는 하나님과 마주하고 교제하는 영혼의 활동이 있습니다. 온 세대를 거처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그랬습니다. 그들 마음을 채운 길이란 주님께서 죄인이 다시 주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열어주신 길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백성을 당신의 말씀을 따라 이 길로 인도하십니다.

반면에, 날 때부터 죄인은 이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죄인은 다른 모든 것은 생각할지언정 주님의 길만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일에 마음이 가득 차 있고, 오직 잠시 있다 사라질 것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마음을 송두리째 바꿔놓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은혜로 역사하시기 시작하시면, 우리는 죽음과 영혼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영원에 비추어서 지금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이란 영원을 향한 준비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며 하늘과 땅에서 지극히 높으신 주권자로 생각하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 자신을 죄의 책임을 지고, 죄악 되며, 타락한 존재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과 우리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신 분이신지, 또 어떻게 해야 우리가 구원받을까를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화해해서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까?”라는 생각이 마음을 누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갈망하며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을 간절히 찾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시며 하나님이 행하시는 그 길이 무엇인지 알려고 애씁니다. 사실 처음에는 감히 이런 마음을 말하지 못합니다. 마음에 두려움과 망설임이 가득합니다. 내가 끔찍하게 가난하고 비참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경우 “하나님의 길을 찾는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나를 경건한 사람이라고 여길 거야”라며 주저합니다.

이런 소심함에 감히 주님의 길을 말하진 않지만, 주님의 길은 그들의 마음에 분명 있습니다. 온 영혼이 주께로 돌아가는 길을 갈망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 길을 말할 때면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마음은 기쁨이 샘솟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그들처럼 주님께로 가는 길을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렇듯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 안에 구원의 일을 시작하시고서 끝까지 그들을 돌보십니다.

이 글은 캐나다의 자유개혁교회 첫 목사로 임직 되셨던 고 타밍가 목사님의 글입니다.

201801 메신저 잡지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