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마태복음 1:21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의 이름 중 “예수”라는 이름보다 중요한 이름은 없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만큼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빌 2:9-11).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듣거나 쓸 때마다 이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라는 이름이 왜 이토록 중요할까요?

하늘 아버지가 주신 이름

그리스도에게 주신 “예수”라는 이름은 그의 하늘 아버지가 정하신 이름입니다. 그래서 매우 깊고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위대한 사명이 이 이름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이름을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서 알려주셨습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 혼인 전에 잉태한 아내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수치를 주지 않고 조용히 보내기로 한 요셉을 위로하시려고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알려주셨습니다(눅 2:21).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불러서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 이름에 담긴 복음을 믿은 것입니다.

복음이 담긴 이름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직접 주신 이름이기 때문에 복음의 핵심이 다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며 그를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 짧은 말에 담긴 가르침은 많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약에서 “여호수아”와 같은 의미입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구원”, “여호와가 구원하시도다”라는 뜻입니다.

영광스러우신 그분의 인격

“예수”라는 이름이 중요한 까닭은 이 이름이 나타내는 분이 영광스러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마 1:23)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기에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사람이십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하고 말했습니다. 

은혜로운 그분의 사역

“예수”라는 이름의 중요함은 그가 이 땅에서 행하시는 은혜로운 사역에서 두드러집니다. 천사는 요셉에게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하며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구원이란 우리의 가장 큰 문제에서 건짐 받고 가능한 가장 큰 복을 받는 것입니다. 참 구원자라면 죄인을 마음 깊은 고통에 여전히 남겨 둔 채 단지 작은 문제만 고치거나 증상만 없애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삶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경제 불황도 아니고, 중동의 전쟁 위협도 아니고, 가정의 붕괴도 아닙니다. 물론 이 문제들이 심각하기는 하지만 가장 큰 근본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 삶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죄입니다. 탐욕과 증오와 이기심과 같은 것이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분쟁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법정에서 유죄로 정죄 받았다는 데 있습니다. 이 정죄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신 구원자

 “예수”라는 이름에 담긴 복음은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구원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온갖 종류의 죄인을 모두 구하려고 오셨습니다. 뒷골목에 있는 알코올 중독자, 마약 중독자, 창녀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탐욕스러운 금융인, 부패한 사업자, 자기 의에 빠진 기독교인까지 모두를 그들의 죄에서 구하러 오셨습니다(요 4:1-42; 8:1-11; 눅 19:1-10; 요 3:1-11). 이들 모두가 자기 죄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이들의 죄가 허다할지라도 예수님은 이들 모두를 구원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악한 죄인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살인자도 구원하셨습니다. 그들을 세상 법을 따라서는 벌 받도록 내버려 두셨지만, 영원한 형벌은 피하도록 해주셨습니다(눅 23:39-43). 그러니 그대가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예수님은 그대를 능히 구원하실 구원자라고 바울이 그대를 격려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예수님은 우리를 우리가 저지른 죄의 법적 책임에서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의 책임을 질 만한 아무런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죄 때문에 죽으실 수 있었을까요? 바로 다른 사람의 죄의 책임을 예수님이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사 53:10,11; 히 10:12).

예수님은 또한 죄인을 죄가 사람을 자기 종으로 사로잡는 능력에서도 구원하십니다(롬 6:14). 우리는 술이나 마약에 중독된 사람을 비웃을 자격이 없습니다. 날 때부터 우리 모두가 죄와 죄가 주는 즐거움과 죄악된 습관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의 교제를 나누도록 이끄시면, 신자는 죄를 용서받을 뿐 아니라 죄의 속박에서도 벗어납니다. 물론 이 땅에서는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죄는 신자를 더는 다스리지 못합니다(롬 6:14).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죄에서 건져 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신자의 구원자이자 주님이십니다. 신자는 새 생명 가운데 삽니다. 마음이 새로워져서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바램으로 삽니다. 이런 새로운 마음과 삶은 성령께서 신자를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하나 되게 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성령으로 신자 안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행할 마음을 주시고 또 그렇게 행하게 하십니다(빌 2:13). 그래서 신자는 죄와 맞서 싸우는 신령한 전투에 임합니다(롬 7:19-23). 그리고 예수님은 신자들을 영광으로 데려가실 때 마지막 남은 죄의 흔적까지 모두 없애실 것입니다(계 7:14). 그러면 신자는 천국의 천사처럼 거룩해질 것입니다.

이런 구원자를 나의 구원자로 약속하심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말은 온 세상에 널리 전파되어야 하는 복음입니다. 이 말은 ““예수”라는 이름을 듣는 사람마다 예수를 영접하라“는 진심 어린 제안입니다. “여기 영광스러우시고,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계시며,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하시길 기뻐하시는 구원자께서, 바로 그대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듣는 사람 모두에게 이 구원자를 주시겠다고 선포하신다. 값없이 빈손으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 하나님께서 바로 그대에게도 이 구원자를 주시겠다고 제안하신다. 원하는 자마다 모두 예수께로 나오라. 나와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값으로 사신 구원을 값없이 받으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름을 부르자

예수님께로 나오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죄로 찔려 상한 그대의 마음에 예수님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대를 죄에서 구원해 달라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행 2:21). 예수님께로 나오신다면 그대는 예수님이 그대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신 “양”이니 구원받은 예수님의 백성으로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것입니다.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지만 이런 복음의 부르심에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응답하지 않는 현실은 참 슬픕니다. 그러나 구원받기 위해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이름은 참으로 복되고 복됩니다! 이 예수님은 지금 지극히 높으신 하늘에 계십니다. 하늘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계획의 마지막 단계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바로 자기 백성을 영원한 영광으로 데려가 완전함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을 준비합시다. 감사함으로 삽시다. “이렇게 큰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감사함을 다 표현할까?”라는 요리문답의 말처럼 삽시다. 구원받은 사람마다 자기가 더는 죄와 사탄의 종이 아닌 것을 삶으로 드러낼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죄악 된 태도와 습관과 행동에서 모두 구원하십니다. 은혜의 능력이 예수님의 백성에게서 더욱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마음의 큰 평강과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예수님의 백성의 “유일한 위로”는 이제 내가 나를 죄의 법적 책임과 심판과 마귀의 권세에서 건져주시고 나에게 기꺼이 주님을 위해 살려는 간절한 바람을 주신 예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문).

오! 참된 구원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요! 우리는 구원의 기쁨에 마음이 벅차올라 천사와 같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눅 2:14) 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으면, 더는 “나에게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노래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실 날을 간절히 기다릴 것입니다(빌 2:10).

이 묵상은 온타리오주 바인랜드 자유개혁교회의 은퇴 목사님이신 피터 반데메이든 목사님의 글입니다.

201212 메신저 잡지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