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 질병과 죽음에대한 그리스도의 승리
최근 세계적으로 코비드 19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확산에 대한 두려움과 확산 사례들로 뉴스 보도들로 가득차 있다. 질병을 관리하는 것에 종사하는 사람들 뿐아니라 치료책과 질병을 방지책을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현대의 과학에 대해서 감사한다. 이 중요한 업무에 자신을 헌신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러는 동시에 우리의 소망은 죄에 대한 삯을 지불하시고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마귀와 죽음을 이기신 그 한분에게 있어야 한다. 그러한 대속적 사건들은 마지막 승리를 향해 움직이고 있으며, 확실하고, 영원함이 죽음을 삼키게 되는 그날에 최고조에 달하게 될 것이다. 성경 전체는 이 승리를 증거하고 있으나 특별히 고린도 전서 15장이 정확하게 가장 영광스러운 방법으로 축하하고 있다. 우리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혼란과 두려움이 있는 가운데,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확실한 소망에 집중하기를 기원한다.
부인하며 살아가기
타락한 세상에서 살면서, 우리는 매일 죽음이 확실하며, 삶은 불확실하다는 것을 상기한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뿐 아니라 또한 다른 질병들과 질환, 사고, 전쟁 그리고 고난들이 그리스도께서 이제 곧 다시 오지 않는다면 두리는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어떤 사람들은 부인하는 삶을 살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탈피하고자 노력한다. 그들은 죽음이 도래하지 않거나 적어도 당장 죽음이 오지 않을 것처럼 행동한다. 이런 한 현상이 고린도인들에게 나타났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현재 줄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다고 믿었다. 거짓 선생들의 영향을 통해서 어떤 사람들은 복음이라는 것이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신은 이미 삶의 가장 풍성함 속으로 이미 진입하였고, 부활이라고 하는 것이 미래에 일어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잘못 이해하였다 (고린도 전서 15장 12장). 부활은, 이런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당신이 삶의 풍성함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어떤 높은 차원 속에서 사는 삶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부활이란 이미 심판이 그들에게서는 다소 지나가 버렸고, 그들은 지상에서 천국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좋을 때로 살 수 있는 상태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들은 지금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에게 있어서 미래에 부활의 도래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육체는 무시할 수 있고, 거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바울은 “그렇지 않다”라고 반박했다. 그리스도는 육체를 통해 부활하셨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하여도 (요한1서 3장 14절), 미래가 있는데 영광 스러운 미래이며, 몸의 부활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고린도전서 15장 24절), 바울은 이미 마지막 때가 이미 도래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그것은 마치,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특별하다. 당신의 마음과 인생속에서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다. 당신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한 삶으로 그 모든 것을 드러낼 것이지만, 마지막이 이미 도래하였고 지나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 마지막은 아직 도래해야한다.”
건강과 부요함을 가질 자격이 있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인데, 특히 우리가 우리 삶 속에서 많은 질병과 죽음을 경험하는 때에 그러하다. 우리는 세상의 마지막 때에 관한 바른 교리에 대하여, 몸의 부활과,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너무 쉽게 우리는 현재의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해야 한다고 상상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건강과, 부, 그리고 번영 복음을 신봉하는 사람들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날 뿐만이 아니다. 그런 삶의 방식은 신조와 신앙고백에 있어서 정통한 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행복은 우리가 맛보고, 만지고, 다룰 수 있는 것들이나 물질들에 귀속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물질주의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타난다. 교회 안과 밖에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느낌을 보완해주는 영적인 세력과 의식들을 활용하면서 고차원적인 삶을 살아보려고 시도하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고린도사람들의 정신은 지금 서구 세상에 건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신나게 살아가고 있는 동안” 마지막을 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크고 분명히 말해준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라고 말이다. 죽음과 질병은 우리의 죽음을 상기시켜주고 우리는 여기에서 영원을 준비해야 함을 알려준다.
전투하면서 살아가기
그리스도인들은 전략적으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즉, 우리는 전투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많은 적들과 싸워야만 하는데, 그 적들은 우리 안과 밖에 모두 나타난다. 죄는 엄청난 적이다. 마귀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적이며, 힘이 세다. 세상은 또한 교활하지만 무시무시한 적이다. 우리 자신들의 죄된 육체는 힘이 매우센 적이다. 거짓 가르침, 거짓 선지자들, 그리고 외식하는 자들은 지독한 적들이다. 회심하지 않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에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관점과 희망을 가져다 준다. 그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대항해서 이길수 없다. 그분은 자신의 발아래에 원수들을 하나도 예외 없이 자신의 발아래에 두실 것이다 (히브리서 2:8). 그분은 그 모든 것을 단번에 하지는 않으신다. 그분은 그것을 승천하신 이후로 세계 역사에 걸쳐서 시간을 두고 진행하신다. 시편 110편 1절은 어떻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씀하시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매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은 그 원수들을 하나씩 바깥 어둔운 곳으로 판단 후 보내버리시면서 자신의 적들을 그렇게다스리신다.
질병과 죽음
우리는 요람에서 고령자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암, 심장 질환, 면역 결핍증과 많은 질병들에 대한 치료책들과 처방들이 있는 것에 감사한다. 우리는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COVID-19)에 대해서 더욱 그런 치료책이 나오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질병은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질병은 죽음을 가져오는데, 성경은 그 죽음을 “마지막 원수”라고 부르고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적들이라고 부르고 있는 많은 것들에 비교해 볼때,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이 가장 마지막까지 존재하도록 허락하신다. 믿음을 가진 여러분들은 이 원수의 손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우리 사회가 안락사를 합법화하려는 시도에 우리를 꼬이려고 하여도 죽음은 친구가 아니다. 죽음이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를 데려갈 때, 여러분은 고통을 느끼고 아파한다. 그 슬픔은 오래 지속한다. 그 적은 무자비하고 잔인하다. 그는 노인들과 젊은 사람들을 공격한다. 이 엄청난 원수는 완전히 자유한 것 처럼 보인다. 왜 그런 것일까?
이런 유사점을 한번 생각해 보라. 많은 군대 장군들은 가장 용맹한 여단을 그 마지막 투쟁을 위해서 지켜놓는다. 잘 비축해 두었다가 다른 모든 수단들이 다 무너졌을 때, 그것들을 마지막 수단으로 요청할 것이다. 사탄도 그런 전법을 쓰고 있다. 사탄은 창조시에 처음으로 등장하였고, 그는 두 명을 제외하고 죽음을 통해서 전 인류를 집어 삼켰는데, 에녹과 엘리야는 예외가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성경에 의하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라고 한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 죽음을 통해서, 그리스도는 이 마지막 원수를 패배시키며, 자신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죽음을 맛보셨고, 죽음과 죽음을 두려워 함으로부터 구원해 주신다 (히브리서 2장 9절-15절). 이것으로 인해서, 심지어 오늘, 죽음은 그리스도의 목적을 이루어야만 한다. 비록 죽음이 우리의 마지막 원수라고 하여도, 마지막 날에 그 마지막 원수가 “멸망받”게 될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제시한 것 만을 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15장 26절). 이런 현실을 생각해 보라. 그 장면을 상상해 보라! 우리는 우리의 죄때문에 그리고 그 죄를 바짝 따라서 이 세상에 들어온 그의 멸망을 보게 될 것이다. 죽음은 죽게 될것이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행한 것을 통해 스스로 고통당하게 될 것이다. 죽음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구주의 능력으로 파괴될 것이다.
극심하지만 마지막이 될
작은 단어 “맨나중”을 잘 생각해보라. 마지막 원수이다! 그렇다, 그는 극렬하지만 마지막이다. 그는 크지만 마지막이다. 그의 쏘는 것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죽음의 쏘는 것은 죄이며, 죄의 권능은 율법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6절). 그러나 모든 사람의 눈앞에서 그는 파멸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여,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고, 죽음도, 생명도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당신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로마서 8장 38절-39절). 우리는 회심하지 않은 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처럼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이미 벌써,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성경은 죽음도 “너희의 것”이라고 (고린도전서 3장 21-22절) 말해주고 있다. 여러분들은 그의 것이 아니고, 그가 여러분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안에 존재하고, 이것은 모든 것 속에서 그렇게 되도록 명령받았고 확실하다 (사무엘하 23장 5절).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이 영생으로가는 통로가 되도록 하셨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42문답). 언젠가, 여러분의 눈은 죽음 자체가 파멸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죽음 그 자체는 영원히 패배를 맛보게 될것이다. 성경이 “이 여러말로 서로 위로하라” (데살레니가전서 4장 18절)라고 말한 것은 놀랍지 않다.
경고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안에 현재 거하지 않는다면, 죽음과 질병들이 여러분 밖으로 내몰고가 영원히 죄에 대한 유일한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희생제물이 되신 분에게서 피난처를 찾게 해야한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피하는 것이나 다른 질병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 몸의 치료만을 필요로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위대한 의사가 필요하다. 성령의 일하심을 통해서 그분은 믿음을 주시며, 믿음을 통해 영생을 허락하신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죽음을 직면하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지 마라. 아직 회심하지 않았다면 죽음은 당신의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것은 당신의 죄의 삯이 될 것이다 (로마서 6장 23절). 맨마지막에 죽음과 함께 파멸되는 것은 어떤것이 되겠는가? 그것은 절멸되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죽음과 영원히 다시 살 가능성이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불가역적으로 단절되는 것이며, 양심을 괴롭히는 것이며, 이를 갈며 우는 것이고, 회개와 회복에 대한 아무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사탄의 거짓말을 믿지 말라! 죽음은 모든 문제의 조용한 끝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당신의 진짜 문제는 거기에서 시작하게 될 것이며 영원히 끝나지 않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 안에서 병들고 지친 죄인들을 부르시는 그분에게로 도망하라.